한국 고미술사

드라마 《킹덤》 의상과 조선 후기 상장례 복식 비교 – 죽음을 입는 법

shimmerlog 2025. 7. 9. 20:51

전통 복식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시대와 신분, 감정, 의식을 담는 하나의 상징 체계입니다. 특히 조선 후기의 상장례(喪葬禮), 즉 장례 문화에서 입는 복장은 생과 사의 경계, 애도와 예절의 구조를 정확하게 표현한 시각적 언어였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스릴러이지만, 그 안의 의상은 매우 철저하게 전통 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죽음과 관련된 장면들에서 보여지는 복식은 상장례의 전통과 시각적으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킹덤》 속 장례 장면과 관련된 의상 표현과, 실제 조선 후기의 상장례 복식을 비교하며, 전통 의복이 어떻게 감정과 질서를 전달해주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조선 후기의 상장례 복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상장례는 조선 시대에 매우 엄격하고 정해진 절차를 따라 진행되었던 의례입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애도할 것인지를 복식으로 ‘보여주던’ 사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복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복(喪服): 삼베로 만든 하얀 옷, 남녀 구분 없이 착용
  • 두건 또는 백건(白巾): 머리를 가리는 흰색 천
  • 지팡이(상장): 아버지를 여읜 아들이 들고 다니던 애도의 상징
  • 치마 대신 평상복(두루마기) 착용: 여성도 신분에 따라 간소하거나 예복 수준으로 조절

복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색상 제한: 흰색 또는 회백색 중심 (검정 ×)
  • 소재 제한: 거친 삼베, 무늬 없는 직물
  • 형태 제한: 단순하고 넓은 소매, 장식 없음
  • 계급 반영: 왕족·양반·평민에 따라 소재와 길이 달라짐

이러한 복식은 죽음을 ‘존중’하면서도 ‘절제된 감정’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한국 고미술사 조선시대 의복 전통

 

《킹덤》 속 장례 장면과 복식의 특징

《킹덤》에서는 다양한 죽음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좀비로 변한 시체도 있고, 왕이나 양반이 죽는 장면도 있으며, 백성들의 죽음과 장례도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장면들에서 등장하는 복식은 조선 후기 상장례의 원칙을 충실히 따릅니다.

공통된 복식 표현:

  • 하얀색 또는 회색 상복: 주인공이나 하인들이 입는 옷
  • 머리에 두른 천: 백건 또는 상건과 유사한 형태
  • 삼베 질감의 의복: 고급 재료가 아닌 거친 느낌을 강조
  • 무늬 없음: 슬픔과 단절을 의미하는 시각적 상징

이 복장들은 극중 인물이 어떤 관계로 죽은 자를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왕실의 복식은 격식을 강조하고, 서민의 복식은 간소하지만 의례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며, 죽음을 중심으로 감정과 질서를 전달합니다.

 

 

색과 감정 – 왜 흰색인가요?

조선의 상복은 ‘흰색’입니다. 흰색은 지금의 ‘결혼 색상’이 아니라, 과거에는 죽음, 공허, 이별을 뜻하는 색이었습니다. 《킹덤》의 장례 장면에서 흰색 복장이 화면 전체를 지배할 때, 그 장면은 생동감보다 정적이고 슬픔을 강조하는 감정적 톤을 형성합니다.

  • 배경과 의복이 흰색일수록 감정의 움직임은 억제
  • 인물의 움직임은 크지 않으며, 의복이 감정을 대신 표현
  • 이는 조선 후기 사람들이 애도를 어떻게 ‘보이게 했는지’를 드러냅니다

또한 흰색은 좀비로 변한 시체의 시각적 대비 역할도 합니다. 깨끗한 흰색 복장이 피와 붉은색, 죽음의 움직임과 강한 대조를 이루면서 공포와 감정이 함께 표현됩니다.

 

의복이 말해주는 신분과 관계

조선 후기의 상장례는 ‘누가 누구를 위해 애도하는가’에 따라 복식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직계 가족인지 아닌지, 여성인지 남성인지, 양반인지 상민인지에 따라 의복 구성과 색감, 장식 여부가 달랐습니다. 《킹덤》에서도 인물의 위치와 관계에 따라 복식이 분명히 구분됩니다.

  • 왕의 장례에서 상궁들이 입는 예복은 기본 상복 + 예장 요소(치맛단 조절)
  • 양반 집 장례에서는 종들이 흰 상복에 더해 두건이나 천으로 머리를 가림
  • 하층민이 사망했을 때는 삼베옷을 무명천으로 간소하게 연출

이러한 표현은 단순한 리얼리즘 재현이 아니라, 복식을 통한 서사 전달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고미술로서의 복식 – 회화와 비교해도 닮아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상장례 복장을 묘사한 의례도(儀禮圖) 또는 풍속화가 남아 있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이 입은 상복은:

  • 흰 두루마기와 상건
  • 상여꾼들의 짧은 조끼 형태 옷
  • 상여를 따라가는 무명의 소복 행렬

《킹덤》 속 의복 연출은 이 회화 자료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단순히 고증을 넘어서, 전통 회화의 시각적 구성까지 재현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미술적 연결은 드라마의 현실감을 높이며, 한국 전통 복식에 대한 인식을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마무리하며-

조선 후기의 상장례 복식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질서를 표현하는 장치였습니다. 드라마 《킹덤》은 장르적 긴장과 공포 속에서도 그 복식을 충실히 구현하며, 죽음을 둘러싼 전통의 시각 언어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옷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 정해진 틀 안에서 지켜야 했던 예절, 그리고 죽음을 다루는 전통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전통은 옷을 통해 말을 걸고, 콘텐츠는 그 말을 오늘의 시선으로 되살려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