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미술사

데몬 헌터스가 재해석한 한국 고미술사의 도상학적 요소

shimmerlog 2025. 6. 29. 23:26

한국 고미술의 도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데몬 헌터스’는 단순한 오컬트 액션을 넘어서, 시각적으로 매우 밀도 높은 작품입니다. 특히 국내 시청자라면 낯익게 느껴질 법한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요,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화면 속에 스치듯 나타나는 문양, 장면 구성, 연출 방식 중 상당수는 한국 전통 미술의 도상학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상학은 이미지 속 상징과 그 구조를 분석하는 학문인데요, 과거의 도상이 오늘날 어떤 의미로 다시 태어나는지를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한 틀입니다. 이 글에서는 데몬 헌터스 속 장면들을 통해, 한국 고미술에 등장하는 도상들이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구현되었는지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한국 고미술 전통 문양 데몬헌터스

반복되는 문양 속에 담긴 질서와 상징

전통 미술에서 도상은 단순한 ‘무늬’나 ‘그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의 가치관, 종교적 믿음, 미학의 총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민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깨비는 해학적이고도 벽사적인 기능을 가진 상징이었고, 불화 속 사천왕이나 금강역사는 위엄과 보호를 상징하는 구조적 시각 장치였습니다. 고려청자에 새겨진 상감 문양 역시 단순한 동식물 묘사가 아니라 ‘부와 장수’, ‘질서와 균형’이라는 관념이 시각적으로 녹아 있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전통 도상은 그림이나 조각의 일부로 존재했지만, 그 배치 방식이나 반복되는 상징 구조는 오늘날 시각 예술이나 영상 콘텐츠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조형 원리를 제공합니다.

 

데몬 헌터스 속 장면은 어떻게 전통 도상을 닮았을까?

데몬 헌터스는 이 전통 도상들을 직접적으로 모사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장면의 기조와 연출 방식에서 구조적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 극 중 주인공이 부적을 사용하거나 공간을 봉인하는 장면에서는 화면 중앙에 원형의 문양이 떠오르며, 그 문양은 반복되는 기하학 패턴과 네 방향의 방사형 선으로 구성됩니다. 이는 고대 불화나 고분 벽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심 상징-방사 구조’의 도상학과 매우 유사합니다. 특히 불화에서 부처의 뒤를 장식하는 광배(光背) 문양이나, 사리함에 새겨진 연꽃문 중심의 방사 구도는 데몬 헌터스의 마법진 연출과 시각적 구조가 겹칩니다. 단순히 둥근 문양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확산되는 상징적 질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까지 이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고전적 미감을 현대 시각 언어로 풀어내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위치와 시선, 카메라의 각도에서도 전통 도상의 ‘배치 미학’이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불교 사찰의 단청이나 불화에서는 중요한 존재가 항상 화면 중앙 혹은 상단에 위치하고, 그 주변을 둘러싼 부처나 신장들이 대칭적 구조로 배열됩니다. 데몬 헌터스에서도 주인공이나 특정 인물이 공간 안에서 중앙 축을 기준으로 고정된 자세를 유지하며, 그 주변에서 붉은 기운이나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는 연출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장면은 단지 연출의 미학이 아니라, 존재의 위계와 상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전통 도상의 구도를 계승한 장면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인물 배치와 동선 연출까지도 전통 시각 문화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통을 재현이 아닌 재해석으로 접근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데몬 헌터스가 전통 도상을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입니다. 배경 속 문양이나 도장의 형태는 전통 부적이나 청동기 시대 토템 구조를 떠올리게 하지만, 디테일은 과감하게 현대화되어 있습니다. 직선과 곡선이 섞인 복합 기하 패턴, 어두운 화면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색 대비, 그리고 문양이 회전하거나 파동처럼 퍼져 나가는 디지털 연출은 전통 도상을 무조건 재현하지 않고, 그 상징과 원리를 해체한 뒤 새로운 조형 언어로 재조립한 사례입니다. 이는 고전적 상징이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조형 원리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전통 도상은 여전히 살아있는 창작 자원입니다

전통 도상은 문화의 기억일 뿐 아니라, 시각적 소통의 도구입니다. 데몬 헌터스는 한국적 미감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방식으로, 고미술 도상을 참조하고 현대적으로 응용했습니다. 이처럼 과거의 도상학은 단순히 전시관 속 작품 해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콘텐츠 속 시각 언어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습니다. 전통을 단지 ‘재현’이 아니라 ‘재해석’으로 접근할 때, 우리는 훨씬 풍부한 창작의 가능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데몬 헌터스는 그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며, 앞으로 다양한 장르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더 많이 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