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미술사

기와 위의 짐승들 – 잡상에 담긴 상징과 미감

shimmerlog 2025. 7. 17. 16:05

조선의 궁궐과 고건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붕 위에 작은 짐승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조각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잡상(雜像)이라 불리는 특별한 조형물이죠. 왕실 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잡상은 기능과 상징, 그리고 풍자의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된 고미술 조형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붕 위에서 왕을 지키고 나라를 풍자하며, 동시에 조선의 조형 철학을 표현해 온 잡상의 구조와 의미, 그리고 한국 고미술사에서 그 위치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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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이란 무엇인가 – 건축과 조형의 교차점에 선 상징

잡상은 조선시대 궁궐, 관청, 일부 사대부 가옥의 지붕 위 추녀마루(지붕 끝선)에 설치된 작은 상(像) 조각입니다. 주로 기와를 타고 줄지어 배치되며, 마치 무언가를 지켜보는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요. 이 조각들은 하나하나 다른 형상을 하고 있으며, 보통 선두에 있는 인물 조각을 중심으로 짐승 또는 괴수 형상이 뒤따릅니다.

 

잡상의 첫 번째 자리는 ‘취두(聚頭)’라고도 불리며, 대개 삼국지의 등장인물 중 서유기의 손오공 또는 중국 전설 속 ‘도깨비 관원’ 같은 형상이 앉아 있고, 그 뒤를 다양한 동물이 따라가는 형식입니다. 이 형상들은 단지 신화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왕실과 국가 권력을 풍자하고 동시에 보호하려는 상징적 장치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잡상이 그 자체로 ‘기능’을 지닌다는 점입니다. 단지 상징물이 아닌, 실제로는 추녀의 무게를 분산시키고 지붕이 휘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보완하는 역할도 합니다. 다시 말해, 조선의 건축물은 구조 속에서 조형이 발생하고, 조형 안에 메시지를 담는 고미술적 전략을 취한 것이죠.

 

기와 위에 앉은 조각들 – 조선 시대 잡상의 구조와 구성

잡상은 단순히 짐승을 본뜬 조각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잡상은 일반적으로 1인(선두 인물상)과 최대 9개의 짐승상으로 구성됩니다. 이 조합은 건물의 중요도와 성격에 따라 달라지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궁궐 건물에만 허용된 조형물이었습니다. 관청이나 일반 사가에서는 법적으로 사용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잡상은 왕권과 국법의 시각적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잡상의 짐승들은 각기 다른 상징을 지니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은 위엄과 정의, 봉황은 품위와 여왕의 위엄, 사자는 충절과 용기, 기린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심지어 몇몇 짐승은 인간의 죄와 교만함을 경계하기 위해 괴기스럽고 불안한 모습으로 조형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잡상은 한 건물 위에 앉은 상징의 서사 구조를 만들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건물의 권위와 성격을 읽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조형적으로는 대체로 흙으로 빚고 구운 후 유약을 입히는 방식이 사용되었고, 각각의 조각은 지붕 곡면에 밀착될 수 있도록 곡선형 기와 구조에 맞춰 설계되었습니다. 이 정교한 설계는 단순한 조각이 아닌, 건축과 조형이 완벽하게 결합된 기능 예술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풍자와 경계의 예술 – 잡상의 미적 철학

잡상은 겉으로 보기엔 위엄 있는 조각들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조선의 유교 사회가 가진 풍자적 감각이 드러납니다. 선두 인물은 종종 권력자 혹은 제왕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실은 그 뒷모습을 여러 짐승들이 따르고 있는 형태로 배치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왕이나 높은 관직자도 결국 하늘의 뜻과 백성의 눈을 거스를 수 없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요. 이러한 시각적 구도는 단지 건축 장식에 머무르지 않고, 당시 사회 질서에 대한 암묵적 풍자이자 상징적 유머로 작용했습니다. 궁궐을 방문한 외국 사신이나 백성들은 지붕 위의 조형을 보고 자연스럽게 그 건물의 위상을 인식했을 뿐 아니라, 그 배치에 담긴 암묵적 계몽의 메시지도 함께 받아들였던 것이죠.

한국 고미술사에서 이런 풍자와 질서의 공존은 매우 독특한 조형 미의식입니다. 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잡상이 가장 복잡하게 발전된 나라는 조선이고, 그 조선의 잡상은 단지 상징을 새긴 것이 아니라 국가 권위와 민중의 시선이 교차하는 공간을 시각적으로 설계한 예술이었습니다.

 

잡상은 지금도 살아 있다 – 문화재와 콘텐츠 속의 조형 계승

지금은 대부분의 잡상이 문화재 보존 대상으로 남아 있으며, 일부는 복원되어 궁궐에서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경회루, 창덕궁 인정전, 종묘 정전 지붕 위에도 각각의 잡상이 그대로 남아 있거나 복원되어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이 잡상의 캐릭터성을 활용해 관광 콘텐츠, 문화 상품, 어린이 교육 콘텐츠로 재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잡상 따라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각각의 잡상 조각에 이름과 이야기를 붙여 관람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일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잡상 조형을 모티프로 한 브로치, 키링, 소형 인형 등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복제품이 아니라 전통 조형을 현대적 언어로 번역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잡상이 여전히 우리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심코 걷던 궁궐의 마당에서, 고개를 들어 지붕을 바라봤을 때, 그 위에 줄지어 앉은 짐승들이 과거와 현재, 상징과 기능, 권위와 감정의 교차점에서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고미술사의 입체성과 미감이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건축이 품은 조형, 지붕 끝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잡상은 한국 고미술사에서 유일하게 공간 위에 앉은 조각물입니다. 벽에 걸리지 않고, 땅에 놓이지 않고, 하늘을 배경 삼아 시선을 이끕니다. 이들의 존재는 단지 옛 궁궐 장식이 아니라, 기능이 상징이 되고, 조형이 철학이 되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조선의 장인은 지붕 끝 가장자리에도 메시지를 담았고, 그 위에 상징을 얹었습니다. 잡상은 왕실의 권위를 감싸며 동시에 경계했고, 궁궐의 질서를 수호하면서도 인간의 욕망을 조용히 풍자했습니다. 이는 조형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깊은 차원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잡상을 다시 바라보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전통의 기술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조형 속에 감정과 통찰이 조용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붕 끝에 앉은 짐승 하나에도 한국 고미술사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잡상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