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석가탑, 구조로 승화된 신성한 조형미
경주는 한국 고미술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도시 중 하나입니다. 그 중심에 자리한 불국사는 단지 종교 공간이 아니라 조형미와 기술, 철학이 집약된 고대 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석가탑은 장식 없이 구조로만 감동을 전하는 대표적인 조형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불국사 석가탑을 중심으로 신성함이 어떻게 조형으로 구현되었는지, 조선이나 고려의 화려한 미감과는 다른 고대 조형의 절제된 아름다움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감각의 깊이를 전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돌로 쌓은 믿음, 균형으로 드러난 조형의 본질
경주의 불국사는 통일신라 시대의 이상을 담은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도 석가탑은 모든 조형의 근본을 물으며 서 있는데요. 사찰의 중심축에 정확히 자리한 석가탑은 높이보다 비례로 사람을 압도합니다. 가깝게 다가가면 탑이 거대한 구조물이라는 것을 잊게 되고, 오히려 묵직한 감정의 중심에 들어선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고대 조형의 힘이며, 단순하지만 완전한 형태에서 비롯된 감각입니다.
석가탑은 단층 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얹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의 석탑입니다. 그런데 그 전형성 안에 독보적인 구조 감각이 숨어 있습니다. 탑신의 비례는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작아지지만, 그 줄어드는 비율은 수치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미세하게 조절되어 있습니다. 시선이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중심이 좁혀지는 이 구조는 단지 무게 중심을 고려한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각적 안정감을 고려한 감각이며, 돌이라는 재료를 통해 구조 그 자체가 조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비움으로 드러나는 고대의 조형 정신
석가탑에는 다른 석탑과 달리 문양이 없는데요 사자상도, 불상도, 연화좌도 보이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조각 장식 없이 돌의 형태만으로 이루어진 이 구조는, 장식이 아니라 구조 자체로 감정을 전달합니다. 한국 고미술사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절제된 조형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 장인들은 아무것도 새기지 않음으로써 가장 큰 감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비움은 신라의 미학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정제된 돌덩이 하나를 깎고 다듬어 올리는 반복된 손의 과정은 마치 수양에 가까운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 반복 속에서 생겨난 리듬은 구조의 정직함으로 이어졌고, 그 정직함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정적이고 안정된 미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이해, 재료에 대한 존중, 그리고 시선에 대한 계산이 이루어진 고미술의 감각입니다. 탑을 이루는 돌 하나하나는 일정한 두께와 넓이를 가지며, 모서리 처리도 각진 곳 없이 유연하게 처리되어 있어 단순한 가공이 아니라 장인의 손끝에서 축적된 경험과 감정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탑 전체가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시선의 흐름을 유도하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감각을 통해 재료가 조율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간을 압도하는 조형의 리듬
불국사 경내에서 석가탑을 바라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 존재감인데요.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다보탑이 시선을 끌기 위한 구조라면, 석가탑은 시선을 안으로 끌어당기는 구조입니다. 이는 탑을 구성하는 비례와 축선이 사람의 시각 흐름과 감정을 읽고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조가 곧 감정을 형성하는 조형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장인들은 자신이 만드는 구조가 그 공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어떻게 보일 지를 몸으로 체득했습니다. 그래서 석가탑은 겉으로 드러나는 장식 없이도 그 자리에 놓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구조는 견고하면서도 단단하게 닫혀 있지 않고,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수직축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구조가 조형이 되고, 그 조형이 감정을 건드리는 방식은 한국 고미술사에서 가장 본질적인 조형 방식 중 하나입니다.
또한 석가탑은 시간의 흐름을 머금은 조형이기도 한데요. 수백 년을 지나면서도 탑의 균형은 무너지지 않았고, 돌은 풍화되었지만 구조는 여전히 중심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당대의 구조 감각이 단지 한 시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기를 바랐던 장인의 의도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구조에 스민 신념, 조형으로 남은 정신
경주의 석가탑은 조형적 완성도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정을 전합니다. 그 이유는 탑이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시선을 고려한 구조적 감각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장인들은 기능과 신념을 돌로 옮기며 구조로 감정을 빚었고, 그 결과는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한국 고미술사는 이렇게 ‘무언가를 꾸미는 미술’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중심에 둔 조형의 역사입니다. 석가탑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도 명확한 해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형태 하나, 비례 하나에도 감정이 스며 있고, 신념이 녹아 있으며, 구조 그 자체가 조형의 결정체로 기능합니다. 불국사의 조용한 마당에 놓인 이 탑은 조선이나 고려의 화려한 조각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석가탑이 가지는 독보적인 조형적 깊이입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또 다른 장소, 또 다른 재료를 통해 한국 고미술사의 감각이 어떻게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계속해서 탐색해 보겠습니다.
조형은 형태가 아니라 감각이었으며, 그 감각은 결국 인간의 경험에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